나의 20대는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는 20대라고 했다.

지금와 돌아서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푹자고 앉아만 있어도 에너지가 넘치던 그 시절은 과연 

화려하고 빛나는 시기인거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기를 잘 보내지 못했다. 입시에 시달리던 19살을 거쳐 스무살에 달랑 수중에

몇만원을 들고 올라온 타향에서의 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먹고 잠을 자던 집은 여러방을 쪼개어서 만든 하숙집이였다. 방에는 고시준비를 하던 형도 있었고

날품팔이를 나가던 사람, 낮에는 자고 밤에만 나가는 사람 다양하던 사람이 있었다.


먹는것은 당연히 편하진 못했고 가장 힘든것은 내가 입고 살던 옷들을 모두 내 손으로 처리해야

되는 괴로움이였다. 내 손으로 내가 입는 옷들을 빨고 말리는 일이 이렇게나 귀찮을줄 몰랐으니

부모님한테 그걸 맡기고 살던 시절이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학시절이라 가진돈이 부족해 취미생활은 못했고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학교와 무료한 저녁이였다.

차츰 친구가 생기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노는 재미에 처음은 기분이 좋았지만 이에 곧 허무해졌다.

일년도 지나지 않아 군대에 징집되고 군시절은 정말 내일이 오는건지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


그리고 다시 수년 뒤에 돌아간 학교는 이제 너무 달라져있었고 아는 사람도 드물어진데다

그간 지원을 해주시던 집의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져 더이상 손벌리기가 곤란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점점 먹고 입는 것을 줄여서 사는 방법으로 버티게 되는데 이때가 사람들이 일컫는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가 보다. 닥치는대로 알바를 하고 일을 얻어 몸을 굴렸는데 여러 일을

하다보니 차츰 살아가는 자신감이랄까 어디가서 굶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괜찮은 일거리도 구했고 그 바탕으로 유일한 취미였던

게임생활을 어떻게 저떻게 본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인연으로 당시 한창 뜨던 IT회사에 인턴생활을 거쳐 입사도 하게 되었고 

다달이 연재하는 어떤 잡지에 글을 올려 밤과 낮으로 돈을 벌 기도 했다.

결국 이 바탕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집에서 완전히 독립한지도 3년, 그리고 IMF의

난리속에서도 취업과 알바를 이어나가며 살았다. 이때 하루는 아침에 산 쿨피스 한개와

500원짜리 삼각김밥이였다. 이것만 먹고도 살아갈수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처절했던거 같다.


그리고 돌아보니 어느덧 20대는 끝나있었고 나는 인생의 가장 화려했다던 시기를 오로지

타향에서의 생존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미친듯이 살고 있었다. 그 목적은 다행히도

달성했지만 국민/초등학교 6년+중고등6년+대학4년+군대휴학4년의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슬픈 시기가 20대였던거 같다. 


20대의 추억이란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책을 읽고 물을 마시고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살아남아야 한다라는것 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20대는 그냥 허무하고 외롭고

되게 추웠던 기억밖에 안남았다. 


그래서 남들이 화려한 20대를 동경하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한편으론 부럽지만 다른 쪽에선

뭔가 '나 때는 저런거 없었어' 같은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이래서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걸지도 모르겠다.
by 글로리ㅡ3ㅢv | 2021/07/14 11:45 | 오늘하루는 | 트랙백 | 덧글(0)
급성 심근경색
오전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지난 저녁에 들어올 때 사먹었던 빵이 잘못되었나 싶어 후회가 들었다.

그러다가 목이며 어깨까지 답답하다 못해 뻐근한 느낌이 들어 병원에 들렀다.

병원에서는 CT를 찍어보려곤 했으나 진찰받는 당시에는 몸 상태가 조금 나아져 간단하게 

소화약 정도만 처방받고 나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6시를 넘어서 가슴 통증이 심해졌다. 가슴과 어깨 목까지 통증이 퍼져 몸을 바로잡기 힘들었다.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큰 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코로나가 한창 창궐할 때라 우선 코로나 검진부터

받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대기했다가 X레이 촬영을 했다. 역시나 심장쪽 혈관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급한 심장 혈관을 뚫는 시술과 혈관을 넓히는 내시경 시술을 받기로 했다.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심근 경색으로 심장 혈관 우회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었다.

같은 증상이 찾아왔는데 아버지보다는 조금 이른 나이에 발병한거 같다.



나중에 얘기를 듣기를 아버지께서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 서울까지 올라가셔서 빨리 수술을 받으시려고

한바탕 소동을 만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이 끝나고 고향에 가자마자 바다에 뛰어들어 xx섬으로

헤엄쳐 가시다가 도중에 오셨다고 한다... 휴... 


저녁 8시쯤 시술을 시작했는데 굉장히 아플꺼라 생각했는데 시술은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오른팔로 가느다란 시술용 관이 삽입되는 느낌이 가슴께까지 느껴졌다. 혈관은 심장 입구께에서

막혀있었다고 한다. 막혀있던 혈관은 기구를 삽입해 넓히게 되고 기구는 혈관에 박혀진 채로

살아야한다고 한다.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 가슴은 점점 편안해지는걸 느끼게 되었고 이만한

정도로 해결되기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 팔은 시술할때 삽관했던 위치라 노랗게 멍이 들고 몇일의 상태를 보기 위해 주말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by 글로리ㅡ3ㅢv | 2021/05/28 10:00 | 오늘하루는 | 트랙백 | 덧글(0)
요새 꾸는 악몽
내가 주로 꾸는 악몽은 공업수학 시험이였다.

분명히 아는 문제인데 도무지 풀리지는 않고 계속 시험종료 1분이 반복되는 아찔한 순간이다.

이 악몽을 깨기 위해서 미적분과 해석기하학, 공업수학을 다시 공부했다.

그 이후부턴 악몽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새는 자꾸 취업도 못하는 학교로 복학하는 꿈을 자주 꾼다.

밥만 축내고 뭐할지 늘 불안했던 시절, 학교 졸업은 할 수 있을까. 다음 학교 학비는 낼수 있을까

걱정하던 시절, 그 시절이 다시 악몽으로 살아날줄 몰랐다.



by 글로리ㅡ3ㅢv | 2021/04/22 13:37 | 오늘하루는 | 트랙백 | 덧글(0)
한국물산과 문화가 각광받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물산/문화의 부흥이 한국인의 기질, 정신력에 기반한것으로 얘기를 한다.

한국의 태생이 산업적이고 근면하여 현재의 성공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한국사람들 아니 현재의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근면함이 아니라

다른 점에 있어서 '효율적'이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맞물려 활황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말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산업기반이 전쟁으로 인해 박살나고 난 뒤 미국을 등에 업고 그 관리체제하에 살아왔다.

이는 경제적인 종속기반하에서 미국에 어느정도 의지하면서 살아왔다는 얘기다. 이것까지는 전쟁을 

겪은 나라이므로 어느정도 수긍할만하다. 


그러나 그 경제의 기반인 화폐와 환율이 너무 오랫동안 저평가 받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나?


가령 일본엔화는 달러와 1:100 의 기준으로 교환비가 만들어져 있고(플라자 합의 이래로) 역사적으로

큰 변화없이 현재는 1:120 정도로 맞춰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1000의 비율 즉 일본의 1/10에 해당하는 환율로 아직도 평가받는다.


환율은 국제수요에 맞추어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순진한

사람들이다. 누가 환율의 가치를 정하는지는 미재무부와 일본 경산성의 양적완화수준을 보면안다.

이놈들이 저 비율에 맞추어 화폐를 찍어내며 세계시장을 손에 쥐락펴락하는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1/1000수준, 일본의 1/10 수준으로 맞춰진 물가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이는 그 사람들보다 훨씬 부족한 환경에서 감내해야되는 '효율성'으로 발전했고 이것이

양적완화시대 =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시대를 만나니 세계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먹는 것으로 생각해보자. 한국의 식단은 낮은 노동수가, 반찬 재활용에 의한 단가낮춤으로

최적화되어있는데다 농촌산업이 부족한 기반을 다양한 식재료화로 버텨왔다.


그냥 쉽게 말해서 돈이 없으니 줄여먹고, 최대한 아껴먹고, 먹을건 다 먹으며 살아왔다는거다.

고기가 부족하니 어떻게든 아껴먹고 많이 먹기 위해 비린내/누린내/상한내를 줄이기 위한

양념류가 발전했다. 나물류 반찬이 이제사 베지식단이니 비건식이니 각광받지만 이거

없어서 못먹고 사니 어떻게든 먹을라고 한거지 물산이 풍족하면 먹겄나...


나는 한국사람으로서의 문화적인 자긍심을 가지는 건 좋지만 그것을 자생적인, 그리고 고유하다고

여겨지는식으로 국뽕하는 문화를 혐오한다. 다만 그 안에서 누릴건 잠시나마의 (마음의?) 안정과

세계질서속에 왜 이것이 더 '효율적'으로 살아남는 것인지를 알아보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것으로 보면 세상은 좀더 각박해질것 같다. 세계의 수준이 우리가 먹고 사는 수준으로

버텨내지 않으면 힘든 시기가 온다고 본다. 우리나라만큼 효율적으로 사는 곳이 있을까 싶지만

아마 안찾아봐서 그렇지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더 효율적으로 사는 나라가 있을꺼다.


이제 구미+일본의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본다. 우리가 각광받는 몇가지 분야는 사실 결핍과

부족에서 비롯한 효율성에서 나온거라고 나는 생각하며 아마 이는 세계질서가 다시 뒤집힐 때까지

이어질꺼 같다. 
by 글로리ㅡ3ㅢv | 2021/03/26 12:05 | 오늘하루는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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