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개발 - 욕망을 읽는 기획자1
목차
욕망을 읽는 기획자1(현재 페이지)
욕망을 읽는 기획자2
욕망을 읽는 기획자3
욕망을 읽는 기획자4

나는 사물과 현상을 잘게 쪼개는 것을 좋아한다. 단순히 내용을 깊게 쪼개는 것만이 아니라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서 분류해두는 것을 말이다. 어릴적부터 오락실의 게임들을 제작회사와 제목을 잔뜩 머리속에 외워서 적어두고는 속편과 원작의 차이를 장황하게 늘어놓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생때였을까 시험지(or 연습장)에 빽빽하게 적었던 수많은 게임들을 보고는 주변의 친구들이 '단단히 미친놈'이라고 농담삼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난 그 당시 완전히 게임에 미쳐있었다. 미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뼛속까지, 하나에서 열을 넘어서 내 영혼이 온통 게임으로 가득차버린 그 심정을 요즘은 '게임중독증'이라고 표현한다고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내 상태를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할 정도였다. (나는 게임 중독증이 아니라 극단적인 '게임의 초탈상태'를 경험했던 것같다.) 이 글은 내가 왜 그렇게 게임에 빠져버렸고 또 그렇게 빠지게 된 이유를 어떻게 하면 다시 나의 일에 심어넣을 수 있을까 하는 오랜동안의 고민끝에 적은 글이다.

게임에 빠져든 이유 1 - 호기심
첫번째로 내가 게임에 빠져든 이유는 텔레비전 화면이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인다고 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였다. 단순한 화면의 작은 도트하나가 패들의 조작에 의해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벽돌깨기의 화면은 당시로서는 꿈에도 상상못했던 광경이였다. 새로운것에 눈이 쉽게 끌리는 것은 어린시절의 순진무구함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기술의 폭풍속에 빠져있는 현대인은 자기의 상상력을 박살내버린 이 감동을 느끼지 못한 것이 어쩌면 지금의 '불감증'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게임에 빠져든 이유 2 - 불만
어린시절의 나는 내 나이또래의 다른 어린이들에 비해 해외문화를 접할 기회가 비교적 쉬웠었다. 서울도 아닌 먼 지방의 외진 소도시에서 외려 서울보다 한발빠른 해외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TV에선 항상 똑같은 화면, 칙칙한 눈초리의 사람들이 구질구질한 대사를 읊으며 애국애족만이 살길이라는 계도(혹은 프로파간다)가 버무려진 주제만을 반복하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새로운 문화와 정보에 탐닉하였다. 이런 기회는 80년대 당시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문화/예술방면에 대한 사회의 탄압때문에 가능한 것이였으며 다행히 그 감시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 있었던 먼 지방에서 맛본 새로운 문화의 향기는 나의 머리를 뿌리채 뒤집어놓는 결과를 낳았다. 유치함을 벗어나고자 사춘기의 격동속에서 고민하는 나에게 그 만화,애니메이션,드라마가 가져다준 것은 이런 문화를 만들지 못하는 조국에 대한 불만과 자괴감으로 나를 휩싸이게 만들었고 그때 다가온것이 바로 게임, 그리고 RPG였다.

게임에 빠져든 이유3 - 동경
문화를 통해서 접하게 된 새로운 경험은 나에게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동경을 낳았다. 우주선의 비행사가 되어서 적들과 싸우고 정의의 사자가 되어 악을 무찌르는 로봇이 되어보기도 하는 그런 상상말이다. 당시 이런 나의 막막한 상상은 게임을 만나면서 봇물이 터지듯 발산되기 시작한다. 게임속에선 무엇이든 가능했다. 괴수가 되기도 하고 귀신을 잡기도 하며 공주를 구하러 세상을 누비는 전설의 용사가 되는 모험을 하는 기분은 정말 아찔하리만큼 즐거웠다.

내가 게임에 빠져든 이유 - 그 세가지의 공통분모
어린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내가 게임에 빠져든 세가지 이유를 보면 무언가 하나의 정점에서 포괄되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는 이것을 내안의 '욕망(Desire)'즉, 내가 무언가를 하고싶어하는 욕구의 대리만족으로 보았다. 모험을 하고 싶어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 낯설음 속에서 느끼는 게임속 세계와의 일체감, 비록 내가 바라는 욕망의 완전한(현실의) 구현은 아니였지만 그 욕망의 시뮬라시옹(※)에서 얻는 보상은 현실에서 얻는 느낌과 다른 새로운 만족으로 나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이다.

[※시뮬라시옹(Simulation)]
장 보드리야르에 의해서 주창된 실재를 가장한 실재. '시뮬라시옹'이란 '시뮬라크르'라고 하는 동사의 명사형이며 다시 '시뮬라크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 , 굳이 번역하자만 '가장(假裝)'이라고 할 수 있다(그것만으로 이 단어를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국내 역서에서는 '파생실재'라고 번역해놓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동명의 저서 '시뮬라시옹'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속에 그려지는 가정속에서 만들어진 허구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파생실재'의 의미는 문화전반적인 의미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게임은 현실의 시뮬라시옹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한바 있는 실재의 현실, 그리고 그에 반하여 주인공 니오가 실재인줄 알고 착각했던 현실이 바로 매트릭스의 시뮬라크르의 결과물, 즉 시뮬라시옹이다.

욕망을 끌어내는 기획
오랜 게임의 경험을 통틀어 내가 얻게된 생각이 있다. 현실의 불만 또는 상상의 동경에서 오는 욕망의 다양한 단차가 해소되는 기쁨, 어떤 이는 이것을 '대리만족'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게임의 재미'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 해석이야 어쨋든 게임의 시작이 '욕망의 해결'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것은 보다 게임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므로 그 천차만별의 욕구를 어떻게,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가 게임성공의 열쇠가 된다는 것, 이것이 '다양한 욕망'을 게임기획 첫단계에서 고려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사람들의 공통된 욕망이 있는 곳
내가 게임에 빠진 이유=게임이 가져다준 즐거움이 '욕망의 해소'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면 단적으로 게임을 성공시키려면 보다 많은 사람이 갈구하는 대상을 해소시켜주면 된다는 뜻이 된다. 말이 쉽지 이 복잡한(그리고도 엄청난게 많은) 인간의 세계에서 어떻게 욕망을 간추려 수집하여 해소한단 말인가?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그 많은 욕망을 어떻게 일일이 다 들어줄 수 있을까? 여기서 나는 세세한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그 욕망들 중에서도 매우 집합적인, 그러면서 매우 공통된 '욕망'이 분명히 이 세상엔 존재하고 있다. 그 욕망은 사실 이미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범세계적으로 공명하고 있으며 더구나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범세계적으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욕망, 그것은 바로 '문화'를 통해서 표출되고 있으며 현재 거기에 가장 막강한 위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매스미디어' 그 중에서도 특히 [영화, 비디오]를 위시한 [TV]가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매스미디어(이제는 인터넷도 중대한 미디어가 되어버렸다)를 통해서 다양하게 수집되고 정형화되어가는 인간들의 욕망, 그 양상을 분류해보면 우리가 원하는 '욕망의 실체'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음을 알게된다. -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 이것은 기획자의 필수조건이다.

TV의 위력~욕망의 분출구
어떻게 일개 TV(스크린 or 모니터)따위가 인간의 욕망을 재단할 수 있느냐고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다. 다음의 예를 들어 얘기해보자. 어린시절의 상상이였던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이라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이미지의 보편화)되었을까? 모험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모험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 단순히 상상만으로 미지의 세계를, 그것도 감히 인간들이 범접못하는 세계를 그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비슷한 전형으로 꿈 꾸게 할 수는 없다. 그에 대한 답은 TV(+영화)밖에는 없다고 봐야한다. 다른 매체는 없었을까? 책이나 전설같은 전세대의 텍스트가 사실 TV,연극영화의 전형이기는 했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져 있다. 우리가 아는 상상의 발현은 이제 TV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보아온 모험의 전형이였던 '구니스', '인디아나 존스', '쿼터메인', '톰 소여의 모험'을 당신은 어디에서 가장 크게 기억하고 있는가? 단언컨데 그 기억에 남아있는 이미지는 90%가 영상(또는 이미지)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70년대부터 미국을 위시한 해외의 여러나라들과 가까이는 일본, 중국과 이미 TV 프로그램으로서 소통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프로그램이 몇년 혹은 몇달의 시차를 두고 차츰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으며 그것이 차츰 우리의 욕망을 정형화 하여 공통적인 대상으로 분출 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게임기획에서 필요한 '욕망'을 생각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영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의 차이
그러나 같은 욕망을 두고도 이것을 해소하는 방법이 모두 동일한 것 만은 아니다. 게임문화의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어 욕망의 해소가 어떤 방법으로 구현되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극단적인 예는 바로 RPG와 FPS라는 장르의 선호도 차이이다. 나는 미국과 일본에서의 선호도의 차이가 RPG/FPS로 나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일본 - [선형적인 진행(연출성의 극대화), 3자적인 관점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 = RPG에서 극대화
미국 - [인터렉티브한 진행(자유성의 극대화), 순간적이고 확실한 변화] = FPS에서 극대화

공연, 소설, 강담(이야기꾼)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일본은 확실히 이런 부분에선 세계최강의 선진국이다) 남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그것을 즐긴다. 반면 미국에선 '영웅(heroism)'을 볼 때 이야기의 중심자를 화자(話者)로 보기보다 청자(or 독자)로 대입하려는 경향이 뚜렷한 것 같다. 같은 게임을 두고도 (RPG와 FPS가 순전히 미국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일간의 RPG/FPS장르의 선호도가 갈리게 되는 현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게임의 측면에서 볼때 '영웅,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일본식)RPG에서는 연출, 스토리중심에서 3인칭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그에 대비되는 미국에서는 남이 쌓아놓은 기조를 지켜 나가는 것만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는 FPS라는 장르에서 극대화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욕망을 읽는 기획자, 욕망을 발산하는 게임
문화적인 관점에서 TV를 중심으로한 범세계적인 공통된 조류가 있다는 사실은 매스미디어 연구에 의해 많은 사례가 증명된 바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욕망은 앞서 말했다시피 매우 정형화되어 퍼지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그 재미를 선사하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욕망을 알아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전(全)문화에 걸친 넓은 통찰력으로 그 (욕망의) 공통분모를 뽑아낸 뒤 게임을 내어놓고자 하는 시장이 원하는 가장 빠르고 발전된 방법으로 제시하면서, 그들의 욕망을 해소시켜주고 발산시키는 일이 개발의 원천이 된다면 게임의 성공(대박신화)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사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있어 '기획의 심도가 얕다'라고 하는 문제의 한 단서이며 또한 '문화사회학'이 게임제작측면에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것은 비단 게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에도 해당되는 전분야적인 기획에도 포함되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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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는 게이머(소비자)의 욕망을 짚어 게임으로 하여금 그것을 해소(발산)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 걸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정형화된 욕망은 개인의 경험에서비롯하지만 거대매체를 통해 어느정도 정형화되고 분류될 수 있으며 그것을 분석하여 기획에 반영시켜보자는 게 이 글의 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의 글은 아마도 그 욕망의 전형이나 욕망(또는 재미)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글이 될 듯합니다.
by 글로리ㅡ3ㅢv | 2005/08/02 18:52 | 게임을만들자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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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게임개발 - 욕망을 읽는 기획자2
목차 욕망을 읽는 기획자1 사람의 욕망을 재단하기는 힘들지만 그 공통적인 경향은 시대와 미디어에 의해 어느정도 비슷한 전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 전 글의 골자였다. 이번 글은 그에 이어서 좀더 정형화된 욕망을 분석하여 적어보고자 한다. 다시한번 서두에 언급하건데 이 글은 내가 바라는 것을 어떻게 하면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적......more

Commented by 사바욘 at 2005/08/02 19:03
문화사업의 골자로군요.
Commented by ANTIEGOIST at 2005/08/02 20:19
본문과는 약간 다른 개인적인 예기입니다만.
저는 대학을 만화예술학을 전공했었는데... 지금들어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전혀 다른 쪽-사회학이나 심리학같은것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들고 있어요.
그만큼 문화를 이해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사회학 등의 지식과 철학이 필요하다는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글로리ㅡ3ㅢv at 2005/08/02 23:46
사바욘// 욕망은 인간이 벌리는 모든 사업의 원천입니다. :)

ANTIEGOIST// ANTIEGOIST님이 만약 다른 전공을 하셨다면 만화예술학의 깊은 의미를 아실수 있을까요? 사회학이나 심리학은 관심이 많아서 따로 공부하는 것일뿐 사실 저는 그런것과 하등 관계가 없는 '공대출신'이랍니다. :)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는 역사와 수학이죠. :)
Commented by 블랙잭 at 2005/08/03 00:55
그러고 보면 포켓몬스터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욕망들을 두루 건드리거든요.
훌륭한 게임은 위화감없이 여러 욕망을 한꺼번에 건드리는 그런 게임이 아닐까 생각중입니다.
Commented by 클랴 at 2005/08/04 10:54
저도 따로 좋아하는 분야는 수학과 물리학. 역사도 재미있긴 한데, 깊게 파고든 적이 없어서리... 요즘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hieroglyph)가 재미있더군요. 후아~
Commented by 글로리ㅡ3ㅢv at 2005/08/07 22:27
블랙잭// 포켓몬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다음이나 그 다음 포스팅쯤에서 얘기할 예정입니다. :)

클랴// 수학싫어하면 이 바닥에서 일하긴 힘들죠. 클랴님과 같은 직장있을때(그쪽으로 오시기전에) 프로그래머한테 수식이랑 관계설명하다가 하루 다 간 기억이 나네요. 세상이 편리해지니 의외로 머리 싸매는 일에는 소홀해지는 느낌입니다. ㅜ3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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