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읽고
원제 : L'Empire des Steppes(초원제국,1939)
르네 그루쎄 저 |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공역 |사계절
ISBN : 8971965061
중앙아시아 역사의 고전이며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반드시 읽어봐야 될 필독서



이 책은 내 학생시절 룸메이트로부터 강추(☆☆☆☆☆, 별이 다섯개!)받고서 처음 읽어봤었던 책이다. 도서관 대출기한의 문제로 완독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에 얼마전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여(가격 30,400 열라 비쌈) 비로소 완독을 할 수 있었다. 인문역사서가 그렇듯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지루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일 뿐인 책이지만 저자(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제민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류문명을 모두 포괄하는 장대한 스케일의 배경은 우리나라의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인식(다분히 중국+구미중심)의 큰 구멍을 메꿔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칭기즈칸은 왜 위대한가?
몽골민족의 영웅인 칭기즈칸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왜 '위대한 업적'인지를 설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단순히 땅 넓이 때문에? 수많은 민족을 통합했기 때문에? 위업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어찌되었든 칭기즈칸은 '최초'의 범위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세계의 큰 흐름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위인인들 역사에 한 가닥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겠냐만은 이 몽골인의 영웅이 남긴 동-서 문명의 흔적(전쟁으로 인한 상처든 교역의 성과든)은 인류역사상 가장 크게 인간세계를 흔들었고 그로 인해 역사의 방향을 엄청나게 바꿨다. 화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높은 활성화 에너지를 낮춘 강력한 촉매로써 세계질서수준의 엔트로피를 엄청나게 변화시킨것으로 보면 이 칭기즈칸의 '위업'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것이라 본다.
이 책은 단순히 몽골의 역사만 기재한 것이 아니라 '몽골민족'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한 '유라시아 제(諸) 민족'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고 있으며 그토록 위대하다 침이 닳도록 얘기하는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조차도 기나긴 유라시아 유목민족의 하나였음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나는 여기서 이 내용의 스케일에 압도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명과 야만의 충돌
몽골민족이전에 이미 유연, 에프탈, 훈같은 민족이 유럽문명을 변화(압박)시켰기에 서양적인 역사관에선 '신의 징벌'혹은 '문명의 파괴자'라고 그들을 일컫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근본도 모르는 것들'이 쳐들어와 '정주문명'을 계속 파괴했으니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일컫는 '야만'이란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생활환경의 차이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야만이라 치부했던 그 민족들이 정착하고 난 뒤엔 급속히 그 문명에 동화되었다는 것 만으로 볼때 이 차이는 얼마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지는 않는가 하는 말이다. 그간의 역사적인 관점에선 이것을 '문명>야만'의 우열을 가르는 예로써 언급되었지만 '문화'의 관점이 아닌 '전쟁/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차라리 '문명<야만'이 아니던가. 문명간의 우열비교가 무의미하듯이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차이도 '환경에 의한 차이일 뿐이다' 라는 것으로 보면 이 책에서 언급한 수많은 유목민족의 '지나친 강함'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들은 왜 그렇게 강했나
1/10도 안되는 병력으로 적군을 몰살하고 겨우 몇천의 병사로 수십만을 학살, 숫적인 비교로 보면 가히 유목민족은 공포스러울정도로 강했다. 하루하루를 생존의 압박속에서 사는 유목민족(=야생의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정주문명의 사람들은 '가축'정도의 위력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유목민족)이 지닌 무기가 '원거리'에서 막대한 우위를 가지는 활과 무섭도록 빠른 기동력이였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쓰는 전술은 들에서 사냥하는 수준정도로 정주문명을 압박한 것이며 오히려 정주문명이 내부의 문제나 판단의 오차로 유목민족을 가볍게 여겼음이 책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유목민족, 그 중에서도 몽골의 칭기즈칸이 특히 강했던 이유는 그 군사적인 우위가 아니라 사실은 '외교적인 수완'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협상하여 항복하면 기꺼이 자기 사회로 통합시켜주고 거부하면 끝없이 말려죽여 다음 대적자에게 끝모를 공포를 안긴다. 이것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면서 유목민족이 수많은 내분을 겪으며 자신의 세를 불릴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방법이였다.

전쟁의 잔학성
글의 내용중에 몇가지 언급된 전쟁의 참상중에 정복한 도시 시민을 서로 줄지어 묶게 만든뒤 모두 학살했다거나 학살한 뒤에 잠시 떠나는 척 했다가 숨어있던 사람들이 돌아올 때 다시 돌아와 살인을 지속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을 이슬람문명의 역사가나 서양의 학자들이 야만인의 잔혹성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책에선 그것을 좀 다른 관점으로 다루었다. 실제로 몽골인들은 칭기즈칸이 만든 율법인 '야삭'에 철저히 복종하는 지극히 성실했던 사람들로 명령에 의해 거리낌없이 학살하고 전쟁에서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단순히 명령을 집행한 것 뿐이라고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생각이 훨씬 잔인한 법이며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어린 아이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록 죽음의 의미와 고통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잔혹해질 수 있다고 부연하고 있다. 저자 르네 그루쎄는 유라시아 정복과정에서 벌어진 이 참상을 기존의 역사학자와는 좀 다른, 바로 이러한 '집단적인 특성'에 의거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또한 이 책의 특징이다.

그 외에 재미있는 이야기
이 책에는 전쟁이야기 이외에도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징기스칸'과 '칭기즈칸'의 차이라던가 우리나라 사람이 관심깊게 볼만한 관련사라든가 하는 것이 보는 짬짬이 긴 사설에 지루해진 독자를 다시금 책에 집중하게 만든다.

- 징기스칸과 칭기즈칸은 분명히 구분된 말이라고 한다. 다만 그 내용이 명확하진 않은데 후자가 전자보다 더 강조된 말이다.
-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이라던가 ,발해의 저반을 꾸리던 말갈민족이 몽골민족의 한 부분을 담당했던 '메르키트'일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고려왕조와 몽골의 충돌(다루가치 살해후 강화 천도), 몽골의 일본침공실패등이 짧게나마 책속에 언급되어 있다.
- 원나라 마지막 후예인 아유시리다라가 명나라에 쫓겨 역대 몽골조상의 위패를 들고 몽골로 도망간 얘기도 있는데 아유시리다라가 고려계여인(공녀)의 소생이라는 것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오우 신돈!!)

오래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은 책들 중에서 아시아,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쓴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토록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책이 없었다. 기존의 책들에 묘사되었던 유목민족의 특성은 거의가 '야만인', '약탈자' 수준으로 거의가 그 문명을 파괴한 위력에만 치중하고 있었을 뿐 정복이후의 과정이나 문명에의 동화과정을 이토록 세세하게 설명해주질 못했던 것이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이런 귀중한 책을 한글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 한국의 출판시장이 건실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 저자의 오류에 대해 역자가 수정한 부분도 꽤 된다. 역시 중국사는 한국쪽이 더 빠삭할 밖에...

by 글로리ㅡ3ㅢv | 2006/05/11 11:17 | 오늘하루는 | 트랙백(3)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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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digtal nomad.. at 2007/07/22 21:25

제목 : 유목민 이야기 - 2007년
'야만적' 유목민족들이 만들어낸 세계툰유쿠크의 비문과 '비분강개'한 문체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돌궐 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p.57)나는 최근 이 이야기를 두번 들었다. 한번은 신문에서 읽은 것 같고 다른 한번은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이다. 이 이야기를 두번 듣는 사이에 이책을 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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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유목민 이야기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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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틸더마크 at 2006/05/11 23:17
재미있어보이는군요. ^_^ 징기스칸과 칭기즈칸이 다른 말이었다는 건 처음알았네요. 그냥 같은 말을 음역하면서 생긴 차이 정도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MSX판 푸른늑대와 흰사슴 2편에서는 이름이 '징기스 칸'이었고 3편 원조비사는 '칭기스 한'이었던 걸까요. 음음...뭔 차이인거지...)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06/05/12 00:44
징기스칸 와 칭기스 한 이라...
나중에 원이 여러개의 한국으로 나뉘는데 그 "한"과 관련이 있으려나요.
Commented by 세가사탄 at 2006/05/29 03:55
그러고보니 역사서를 좋아하는 본인이 아직 못본 책이네요.
아는형이 추천해주긴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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